유다서는 1장의 짧은 서신이지만, 마지막 때에 있을 영적 미혹과 불경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들을 박해하는 로마의 존재만큼이나 위험한 적은 은밀하고도 교묘하게 찾아오는 소리없는 내부의 적이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라는 거대한 철학이 헬레니즘 전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고 이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무리들이 점차 교회로 침투하여 믿는 자들을 미혹케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다서의 핵심 키워드는 '하나님의 지키심', '보호하심'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의 미혹과 불경건의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붙잡아야 하며 담대할 수 있는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곧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유 1:1)
얼마 전 학교 방학을 이용해 미국 선교사님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떠났습니다. 이곳은 고속도로가 많이 나있지 않고 지역을 이동하려면 높은 산길을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차량은 20년이 지난게 대부분이고 다들 그렇게 살기에 우리 차도 별 문제 없겠거니 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해발 1900m에 가드라인도 쳐지지 않은 비포장 높은 산길에서 차가 힘이 없이 뒤로 밀리며 자갈과 돌 때문에 방향 조절이 안되어 절벽에 가까스로 걸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짐을 내리고 양미애 선교사와 미국 선교사가 1시간 동안 밀고 했지만 차는 앞으로 올라가지 못했고 뒤로 더 밀리면 낭떠러지라 더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견인차 센터 8곳을 연락했지만 깊은 산속이라 모두 거절을 했고,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찡찡거리는 어린아이들과 장시간 동안 배고픔을 견디며 도움의 손길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3시간쯤 지났을 때 SUV 한대가 반대편으로 지나갔고, 그 안에는 50대 중후반 되는 남성분이 장성한 자녀 둘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하시고는 온몸에 흙투성이가 되어 가며 자신의 차에 로프를 걸어 우리가 탄 차를 안전한 먼곳까지 함께 옮겨 주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분의 차에는 지체장애가 심한 두 자녀가 타고 있었고 뒤에서 계속 소리를 질러댔지만, 약 두 시간 가량을 뜨거운 바닥에 엎드려 망가진 저희 차량을 고쳐주셨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그분은 자녀로 인한 깊은 상처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국 선교사님과 우리는 도로가에서 함께 손을 잡고 그분과 가정의 구원을 위해 전심으로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소풍은 날아가고 진이 다 빠진 채, 7시간 만에 간신히 산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돕는 천사를 보내주시고, 특별히 복음이 필요한 현지인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하심에 나들이보다 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시고 그분의 계획은 어찌나 선하고 놀라우신지요!